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_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017. 2. 18. 23:46Summative/Book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_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_p14


회상이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현실에 대한 열정적인, 혹은 심드렁한 허울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과거의 새로운 탄생이다. _p19


내가 전쟁터에 나갔다는 사실이 슬퍼.

내가 전쟁을 안다는 사실이...... _p21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우리가 위대한 과거에서 쫓겨나 참을 수 없을 만큼 누추한 현실로 내몰렸다는 사실이오. _p40


누구도 지휘관의 결정을 아이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녀가 스스로 알아치리더군.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그대로 한참을 있었어..... 

아기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_p46


나는 평생 역사를 가르쳤어...... 하지만 이 일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언제나 답을 찾지 못했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_p59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결국 혼자야.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나 홀로 죽음을 대면해야 하거든.

나는 그 끔찍한 외로움을 알지. _p65


하지만 단번에 그렇게는...... 금방 그렇게는 되지 않았어.

증오하고 죽이고...... 그건 여자들 일이 아니야. 정말 할 짓이 못돼......

스스로를 설득해야만 했어.

잘하는 일이라고 계속 스스로를 납득시켜야한 했지...... _p73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억이 없어.

당옇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_p83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맹세는 했지만, 필요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군인의 맹세는 했지만

정말 죽고 싶지는 않더라고. 하지만 거기서 살아 돌아간다 해도 마음이 병들 것 같았어.

지금은 '차라리 다리나 팔이 다쳤더라면, 차라리 몸이 아팠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너무 아파. _p84


'마냐 숙모, 만약 내가 불에 타면 뭐가 남는 거에요?' '덧신만 남아요?' 라고 묻더군.

자, 보라니까, 우리 아이들이 우리한테 무슨 질문을 하는지...... _p122


늙은이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젊은이는 죽음에 코웃음 치지. _p125


자연은 사람들의 불행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어.

자연은 사람들의 불행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어. _p126


전쟁터에서는, 말하자면,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이어야해.

그래야만 하지......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말이야. _p127


임신중인 친구가 있었지.

그 친구는 지뢰를 자기 옆구리에 끼워 날랐어.

새 생명의 심장이 뛰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이제 좀 이해가 될 거야.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_p132


전쟁터에서 다짐했던 게 있어.

'그 어떤 것도 결코 잊지 않겠다.'

하지만 점점 잊혀가...... _p145


나는 행복했어......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뻣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많이 놀랐지...... _p157


어딘가에 몸이 성한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 _p162


전선의 소녀병사들 중에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 눈에는 여자로 보이지 않았지.

(생략) 그 아가씨들은 우리를 전장에서 구해낸 우리의 전우였소.

우리를 구해내고 간호해주고 돌봐줬어요. 

(생략)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나쁘게 생각할 수 있겠소?

하지만 당신은 형제하고 결혼 할 수 있나요?

우리한테 그들은 누이엿소. _p169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_p221


무엇이 우리의 추억을 훼방 놓는 줄 알아?

그 추억들을 견딜 수가 없다는 점이야...... _p222


하나님은 총을 소라고 사람을 창조하신 게 아니야.

서로 사랑하라고 만드셨지. _p224


소원이 뭐였냐고?

당연히, 첫번째는 승리였고,

두전째는 살아남는 것 이었지.

누군가는 이랬지. '전쟁이 끝나면 아이들을 여럿 낳을래.'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어.

'전쟁이 끝나면 난 아이들을 여럿 낳을래.'

(생략)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닥치자, 갑자기 모두 조용해졌지...... _p250


전쟁털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_p267


보통의 시간은 그렇게나 빨리 그렇게나 몰라보게 사람의 얼굴을 바꿔 놓지 않기 때문이다. _p285


시장의 불구자들 중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는

'어쩌자고 나를 그때 불길에서 끄집어낸 거야? 왜 구했어?'

라고 소리칠까봐 무서웠죠. _p294


어늘 봄날

우리는 이제 막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들판을 따라 걸으며 부상병들을 찾아요.

온통 짓밟힌 들판.

저만큼 전사한 병사 두명이 보여요.

젊은 우리 병사와 역시 젊은 독일군 병사가 어린 밀밭에 하늘을 보고 누워 있죠......

하지만 전혀 죽은 사람들 같지 않아요.

그저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을 뿐...... _p295


기록병 이야기 _p307


나는 그곳에서 웃음을 잃어버렸어. _p322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했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지." _p419


조국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줬을 것 같아?

통곡하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4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뺨이 화끈거려.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 여자들은 우리에게 소리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젊은 몸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

우리 남편들에게 말이지.

이 더러운 전선의......군대의 암캐들아...'

우리는 정말 온갖 말로 모욕을 당했어...... _p429


첫아이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냄새를 얼마나 맡았는지 몰라.

아무리 맡아도 싫증이 안 나더라고.

그건 행복의 냄새였으니까...... _p430


1945년 3월 17일...... 우리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이야.

정말 작고 얇은 종이 한 장 이었는데......

승리가 코앞이고 남편들이 하나둘 전쟁터에서 돌아오고 있었는데.

앞마당엔 꽃들이 이제 막 탐스러운 꽃망울을 떠트리고.

(생략) 아마 7년은 제대로 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나에겐 해가 비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늘 눈앞이 캄캄했으니까. _p458


'우리 남편도 살아 돌아왔으면,

다리가 없어도 좋으니 제발 살아서만 돌아왔으면.

내가 팔로 안고 다닐텐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지. _p460


"창밖을 보면 거기 꼭 남편이 앉아 있는 것만 같아......

해 질 무렵이면 누가 있는 것처럼 보이곤 하거든......

나는 이제 늙은이가 다 됐지만 남편은 언제나 젊을 때 모습 그대로야.

전쟁터로 떠날 대 모습 그대로.

꿈속에서도 그 사람은 젊기만 하지.

그야 나도 꿈속에선 젊지만......" _p461


"나는 남편 만날 날을 기다려......

만나면 낮이고 밤이고 남편한테 이야기할 거야.

남편한테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저 내 이야기 들어주는 거 말고는.

남편도 그곳에서 많이 늙었겠지.

나처럼." _p462


우리 이야기는 꼭 안 써도 돼......

우리를 잊어버리지만 마...... _p463


전쟁터에 나가본 사람이면 하루를 떨어져 지내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거야.

기껏해야 하루인데도...... _p503


또다시 두 개의 다른 세상,

두 개의 다른 삶이다.

기껏 증오하는 법을 익혔는데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오래전에 잊힌 감정들을, 잊힌 말들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_p511


매일 저녁 친구들이 돌아가며 나를 극장에 델가서 코미디영화를 보여줬지.

'너는 웃는 법을 배워야해. 많이많이 웃어야 한다고.' _p530


그래도 전쟁중에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견뎠어.

정신이 나가버린 건 전쟁이 끝나고 나서였지. _p542


나는 새로운 사람들이 무서웠어.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가 겁이 났지.

새로 왔다 싶으면 어느새 죽어나가고 없었으니까. _p544


나는 전쟁영웅이었고, 더욱이 전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조롱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겪었는데,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의 아들들을,

아내들의 남편들을 구했는데. _p549


전쟁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힘들었어.

그런데 전쟁 후에도 고통을 겪어야 했지.

또 한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

앞선 전쟁만큼이나 끔찍한 또 한번의 전쟁. _p550


p.s  사실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 처럼 전쟁영화, 폭력적인 영화 장르를 굉장히 좋아한다. 

단순히 멋있기도 하고, 요즘은 미디어를 통해 미화된 전쟁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부정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지는 않았다.

이 책도 '전쟁' 이라는 나에게는 흥미로웠던 단어와 '여자' 라는 '전쟁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이 둘의 낮선 조합의 제목이 눈에 들어 와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한 수백명의 그네들의 인터뷰를 옮겨놓은 책이다.

읽으며 전쟁의 대한 이야기들이 더 피부에 와 닿았다.

또 이 책은 대부분의 전쟁스토리 처럼 전쟁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쪽의 이야기,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운문적인 이야기가 아닌 서사적인 '진짜 전쟁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전쟁이아닌, 여자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전쟁의 이야기는 여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표현, 감성으로 전달해주어서... 더욱 더 전쟁의 잔인함이 전해졌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겨 갈 때마다,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부끄러웠고,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책을 다 읽고, 휴가를 나가게 되어 '트리플 엑스' 라는 영화를 진아와 보게 되었다.

시간이 없어 가장 빠른 시간에 있는 영화를 선택한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내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코믹하게 적들을 죽이고, 뿌듯해 하는 모습을 보는데...

책에서 읽었던 인터뷰들이 오버랩되어 불편하였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중에 있다. 아직도 북한의 도발과, 만행들이 난무 하고 있고, 그것들로 부터 나라를 지키지

위해 의무복무를 하고 있는 나라이다. 나도 지금 현제 의무복무를 하고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전면전 상황이 발생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쟁나면 싸워서 북한을 무찌르면 되지...' 라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이 책에 내용들이 한번더 되풀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기고 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라는 생각뿐이다.

  이제 '전쟁' 은 나에게 많이 다르게 다가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진심으로...

사실 '전쟁'을 여자의 입장에서 그린 책이라 독특해 그에 대한 내용들도 써야 하고, 

군인신분으로 있으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더 자세히 써야 하지만... 그만 쓰고 싶다. 


그리고 다시는 이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다른 전쟁으로 인하여 이런 책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